그림 많고 화려한 동화책 오히려 상상력 방해

이정희 2011. 11. 23 (한겨레 베이비트리 ‘아이교육, 그 새로운 발견’)
기사입력 2018.05.01 12:28 조회수 1,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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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계에서 이미 거대한 시장을 형성한 어린이용 도서 판매는 거의 불황이 없으며, 그중에서 유아용 동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두드러집니다. 판타지의 촉진을 위해 아이에게 동화는 필수라고 저마다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연령별 발달에 따라 교육학자, 시부모, 선배부모, 심지어 이웃집 엄마가 추천하는 권장 도서도 다양하기만 합니다.   

상상력의 발달을 위해 실제로 언제부터, 그리고 얼마나 많은 양의 동화를 들려주는 것이 좋은지, 또는 그림이 많은 동화책은 가격이 만만치 않은데 꼭 필요한 것인지, 부모 입장에서 판단이 어려울 때가 자주 있습니다.

 우선 그림이 많고 화려한 동화책은 아이의 창의적인 상상력 발휘에 방해가 됩니다. 그림책을 아이가 눈으로 보는 것보다, 가능한 한 어른이 자연스럽게 들려주거나 또는 읽어주는 이야기를 집중하여 귀로 듣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스토리를 들으면서 배경과 등장인물 소품 등을 아이 스스로 이미지화하면서 자신만의 고유한 상을 그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때 아이는 동화책 속에 인쇄된 그림과 전혀 다르게, 자신만의 독창적인 그림들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두뇌활동은 만3, 우리나이로 네 살, 다섯 살 이후에나 가능합니다. 전래동화가 좋다고 하여, 겨우 두 돌 지난 영아, 세 살짜리 어린 아이에게 줄거리가 있는 옛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아무런 효과를 가져 오지 못합니다. 이 시기는 차라리 리듬감 있게 반복되는 표현이 들어있는 짧은 이야기가 적당합니다. 어린 아이들은 이야기 내용보다 엄마가 육성으로 들려주는 말소리의 울림 자체를 즐기기 때문입니다.   

서너 돌이 지나서야 아이는 비로소 남의 말에 귀 기울여 들으며 집중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이야기 줄거리를 들으며 그 안에 푹 빠져서, 자신의 머릿속에 상상의 그림들을 그릴 수 있는 것입니다. 아이는 머리에 떠오르는 그림()들을 매우 좋아하고 즐기므로, 흔히 한 번 더반복하여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합니다. 집에서 엄마는 이런 기회를 잘 포착하세요. 아이의 상상력이 증폭되는 순간이며, 그런 이야기들은 아이에게 훗날 마음의 자양분으로 작용됩니다


그림1.jpg

그런데 엄마 아빠가 시간적 여유가 없다는 이유에서, 간혹 카세트나 CD 플레이어를 통해 동화를 들려주는 경우 화자와 청자 간의 관계맺음이 빠져 있기 때문에 그 효과는 질적으로 전혀 다릅니다. 아이에게는 어른이 관심을 가지고 자신을 향해 무엇인가를 들려주는 그 분위기를 내적으로 매우 좋아하고, 편안한 상태에서 상상의 날개를 잘 펼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하루에 여러 편의 동화를, 또는 매일 다른 동화를 들려주려고 시도하지 마십시오. 이것은 어른의 욕심일 뿐입니다. 창의성 교육의 견인차 역할로 세계적인 인정을 받고 있는 발도르프 유아교육 현장에서는 동화 들려주기를 전혀 다르게 실천합니다. 매일 같은 동화를 반복하여 3주 정도 들려주는데, 아이들이 아주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줄거리를 머릿속으로 쉽게 따라갈 수 있고, 이를 통해 아이는 심리적 안정감을 얻게 됩니다. 아이 입장에서 그 이야기의 전개를 이미 알고 있는 것이므로 특별한 긴장 없이 풍부한 상상력을 발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잠자리 동화를 여러 개 들려주는 것은 오히려 독이 됩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상상으로 그려낸 그림들이 머릿속에 너무 많이 지나가면, 숙면을 취하는데 방해가 됩니다. 새로운 이야기 보다 아이가 이미 잘 알고 있는 것, 또는 좋아하는 것을 정해 놓고 들려주면, 쉽게 상상의 세계로 빠져들어 편안하게 잠들게 됩니다. 이때 집안 분위기는 당연히 조용하고, 아이 방의 조명은 은은하게 비추는 것이 빠르게 잠들 수 있는 외적 조건입니다. 잠들고 나면 당연히 불을 꺼주는 것이 숙면에 도움이 됩니다

 

Q. 저희 아들은 바로 지난 달 세 번째 생일을 맞이했습니다. 요즈음 부쩍 옛날이야기를 해달라고 하루에도 여러 번 졸라댑니다. 아예 자기가 주제를 정하여 해달라고 합니다. 예를 들어 박쥐와 개가 나오는 것, 또는 기치와 비행기 얘기를 해달라고 합니다. 매일 이야기를 꾸미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작은 딸아이 때문에 정신없이 바쁠 때는 정말 마음의 여유가 없어요. 아이가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맞나요?     

A. 아이 발달에 딱 맞는 현상입니다. 3-5세 시기를 교육학에서는 판타지의 연령이라고 표현합니다. 두뇌 발달 과정에서 아들은 상상력이 왕성한 시기에 접어든 것입니다. 엄마의 판타지를 발휘하여 일상과 관련된 단순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매일 다른 스토리를 꾸밀 필요는 없습니다. 같은 이야기를 들려주어도 아이는 매일 다르게 상상하며 엄마 이야기에 몰두할 것입니다 

덧붙여 한 가지 잘 관찰해 보세요. 아들은 엄마가 자기에게 관심을 보여 달라는 표현으로 이야기를 자주 자주 들려달라고 할 수도 있습니다. 동생이 낮에 잠들어 있을 때, 엄마가 자진해서 오붓한 분위기에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아이는 매우 흡족해 할 것입니다

 

Q. 두 딸 (우리 나이 4세와 6)의 엄마입니다. 제 건강 때문에 친정어머니가 저희 집에 오셔서 육아를 많이 도와주십니다. 근데 요즘 큰 아이가 할머니께 짜증내는 것을 자주 목격하여 제 마음이 편하지 않습니다. 작은 아이와 다르게 큰 딸은 같은 동화책을 읽어달라고 합니다. 특히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잘 듣다가도, 말이 틀렸다고 화를 낼 때가 있습니다. 이야기를 들으면서, 아이가 왜 짜증을 내는 걸 까요 

A. 여섯 살 따님이 평소에 이야기 듣기를 아주 즐기는 것 같네요. 짜증낼 때 한번 할머니가 들려주시는 이야기를 잘 들어보세요. 아마 언어 사용이 평소와 다르면, 이 시기 아이들은 예민하게 반응합니다. 같은 동화책을 즐겨 듣는다면, 아마 아이 머릿속에 그 책의 언어표현을 거의 외우다시피 거의 정확하게 저장되어 있을 것입니다. 이야기에 아주 몰두하다가 할머니가 실수하여 좀 다르게 읽으시면, 그 순간 언어적 변화를 자기 머릿속에서 체크하고 확인하느라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입니다. 아이가 이야기 듣기에 몰두한다는 증거입니다. 다시 말해 동화 듣기에서 상상력 발휘와 언어적 학습과정이 저절로 일어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할머님께도 이런 사연을 잘 설명해드리고 가능한 정확하게 들려주시라고 부탁드리면 분명 더 좋아하실 것입니다.

                    

 

[장주현 기자 anthroposoph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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