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학과 예술

기사입력 2018.09.12 20:48 조회수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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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지학과 예술> 강좌를 듣고

 

김훈태(슈타이너사상연구소)

 

 

인지학이란 과연 무엇인가? 발도르프학교를 그만 두고 연구자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인지학을 좀 더 깊이 있게 공부하고 싶어서였다. 궁금했다. 대체 인지학이란 어떤 학문인지, 엄격하게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싶었다. 현대의 학문을 모르고서는 인지학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겠다는 생각에 사회학과 박사과정을 시작했다. 슈타이너의 사회사상에 대한 특별한 관심 때문이기도 했다. 지금은 과학철학이라는 분야를 심화해서 연구하는 중이다. ‘사회학도 과학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지만, 나의 문제의식은 정신세계를 과학으로 탐구할 수 있고 탐구해야 한다고 주장한 슈타이너의 관점을 이해하는 데에 가 있다.

 

과연 정신과학이란 가능한가? 슈타이너의 사상을 과학이라고 불러도 괜찮은가? 다행히도 현대의 과학철학은 기존의 경험주의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근원세계에 대한 탐구도 과학적으로 가능하다고 본다. 아니, 과학이란 경험에서 출발해 근원이 되는 인과적 힘을 찾는 것이라는 데에 의견이 모아지고 있다. 괴테의 과학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지금, 슈타이너의 인지학 역시 비과학이라는 오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바로 이 지점에서 인지학에 대한 깊이 있는 강좌를 듣고 싶어졌다. 오롯이 인지학 그 자체를 깊이 다루는 강의를 듣고 싶은 마음이 커졌다. 마침 인지학센터에서 <인지학과 예술> 강좌를 진행한다기에 일찌감치 예약을 하고 숙소도 미리 잡아 두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강좌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우선 마가레타 레버 선생님의 인지학과 영혼달력은 영혼달력에 대한 이해를 풍부하게 해 주었다. “정신과학이란 정신세계로 가는 것이 누구나 가능함을 입증하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닌 사고를 통해서 말이죠.” 슈타이너는 올바른 관찰과 사고를 통해 현상의 본질을 과학적으로 탐구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영혼달력은 우리가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우리 인간과 자연은 연결되어 있다. 우리의 의식이 겨울에 깨어나고 여름에 잠드는 것처럼 자연도 겨울에 깨어나고 여름에 잠든다. 그 흐름은 부활절에서 시작해 오순절과 요한축일을 거치고, 미카엘축일에서 성탄절로 향하며 순환한다. 여기에서 교차점은 부활절과 미카엘축일이다. 들이쉬고 내쉬는 호흡의 리듬처럼 인간 영혼과 자연은 잠들고 깨어나며, 지상세계와 지하세계를 오간다. 여기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것은 조화이자 균형이다.

 

레버 선생님은 영혼달력을 읽고 명상하는 작업이 우리의 느낌 영역을 강화해 준다고 말했다. 느낌 영역, 즉 영혼 영역은 정신세계의 힘을 받아들이기 위한 하나의 통로이자, 지상의 힘을 받아들일 수 있는 통로이다. 이때 영혼달력 전체를 관통하는 키워드는 예감(Ahnung)이라고 배웠다. 느낌으로 와 닿기는 하는데 확실하지는 않은 상태, 무언가가 어렴풋이 느껴지는 상태가 바로 예감이다. 그렇게 흐릿하지만 어렴풋하게 느껴지고 아는 것이 영혼의 영역이다. 영혼달력에는 예감과 관련된 말이 9번 나온다. 우리는 이 예감을 통해 고차의 자아와의 만남을 연습하는 것이고, 고차의 자아와 연결될 때 우리의 의식은 더욱 명료해진다. 재미있는 건 파우스트도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를 만나며 자신에게 새로운 길이 펼쳐지리라는 걸 예감한다는 사실이다.

 

안드레아스 크라코브 선생님은 괴테의 작품 <파우스트>를 여러 번 언급하며 인지학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주었다.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것은 물질주의라고 할 수 있다. 기존의 물질주의 과학은 우리의 감각으로 세상을 더욱 예리하게 바라보라고 주문할 뿐 전체로서 하나인, 세상의 정신적 의미에 대해서는 통찰하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을 감각적인 차원으로 환원하는 과학 앞에서 정신은 설 자리가 없다. 다른 한편으로 기존의 교회는 정신세계를 인식적으로 탐구할 수 없다며 오로지 믿음을 강조한다. 인지학은 양극단에서 벗어나, 살아 있는 사고를 통해 정신적인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말한다. “고차 세계로 가는 길은 감추어져 있다. 그것은 그 길을 가고자 하는 사람만 발견하게 된다. 미로를 헤매듯 긴 길을 참을성 있게 가야 한다.” 슈타이너가 <신비극>을 통해 들려 준 말이다.

 

인지학의 길은 자아 의식을 잃지 않은 채, 대상에 대한 살아 있는 사고를 통해 정신세계로 나아가는 것이다. 이 좁은 오솔길 양편에는 아리만의 힘과 루시퍼의 힘이 넘실거린다. 삶은 한 번뿐이라며 부와 명예를 쟁취하라고 압박하는 것이 아리만이라면, 세상의 현실에서 물러나 붕 뜨게 만드는 것은 루시퍼이다. 아리만과 루시퍼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균형을 이뤄낸 인류의 대표자, 인류의 모범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다. 크라코브 선생님은 후기 아틀란티스인 우리 시대의 과제가 바로 악의 힘과 마주하여 씨름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다. 우리는 균형과 평정을 대변하는, 그래서 저울로 상징되기도 하는 미카엘 대천사의 도움을 받아 양극단의 악을 인식해야 한다. 그것이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인 것이다.

 

레버 선생님과 크라코브 선생님의 지적 강연을 예술적으로 보완해 준 손석심 선생님의 조소 수업과 이윤옥 선생님의 회어라움도 무척 훌륭했다. 조소 시간에는 찰흙으로 항아리를 머리에 인 여인을 만들어 보았는데, 내면의 온기와 의지를 끌어내야 하는 작업이었다. 손석심 선생님의 친절한 안내가 있었음에도 섬세한 표현이 잘 되지 않아 애를 먹은 기억이 생생하다. 대체 얼마만의 조소 작업이었는지! 그리고 회어라움은 개인적으로 처음 경험하는 음악 활동이었다. 편안히 누워서 눈을 감고 악기 연주 소리에 몸을 맡기면 되었다. 금속과 나무 등으로 만들어진 다양한 악기의 연주와 물소리를 들으며 자아가 느낌의 물결에 이리저리 떠다니는 듯했다. 조소가 나를 응축해 갔다면 회어라움은 나를 이완시켜 주었다. 전체적인 수업이 잘 디자인된 느낌이었다.

 

사흘 동안 레버 선생님과 크라코브 선생님의 강연을 정확하게 통역해 주신 이정희 선생님을 보며 감탄과 함께 저러다 쓰러지시는 건 아닌지 걱정도 되었다. 강사 선생님들 모두와 함께 이정희 선생님께도 진심어린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정말 많은 분의 수고로 편안하게 강연을 듣고 수업에 참여할 수 있었다. 한때 수강인원이 적어서 폐강이 되는 건 아닌지 불안에 떨기도 했는데, 부디 다음 강좌는 수강인원이 넉넉해서 조기 마감되기를 기도한다. 계절마다 꼭 들어야 할 완소 강좌이기 때문이다. 사흘 간 함께 했던 수강생 선생님들을 겨울에도 뵙기를 희망한다.

[김윤슬 기자 anthroposo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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