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지의 발달에 있어 모방의 중요성

기사입력 2021.05.18 11:51 조회수 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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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기사는 ˝[WHAT IS A WALDORF KINDERGARTEN?], Sharifa Oppenheimer 공저˝에서 유아기 의지 발달에 있어 모방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을 발췌하여 번역한 것입니다. 


모방의 힘은 두 가지 프로세스로 작용합니다. 감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수동적인 과정과 의지를 통해 이 감각정보를 통제하는 적극적인 과정입니다. 한 아이가 태어나면 많은 장기들이 아직 완전히 형성되어 있지 않은 것처럼 리듬적인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를 통해 감각을 받아들이고 의지를 붙잡아 아이의 영혼이 육체적 형태를 완성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완성된 형태의 육체는 지상에서의 목적을 위해 헌신할 것입니다. 

 

이전의 글에서 보았듯이, 아이 주변의 물리적 환경은 아이의 감각이 세상을 향한 개방성을 통해 자라날 수 있도록 준비되어 있어야 합니다. 아이는 주변 환경에 무엇이 존재하든 이를 받아들이겠지만, 그것이 거칠고, 지나치게 자극적이고, 기계적이며, 전기적이고, 폭력적이라면 아이의 자연스러운 유기적 반응으로써의 감각은 차단되고 맙니다. 

세 가지 주요한 가르침을 기억합시다: 감각 경험, 정서적으로 반응하는 움직임 그리고 주변환경 안에서 모델링 된 것을 따라하는 능력. 감각 경험이 유기적인 반응을 차단해버린다면 학습은 커다란 방해를 받게 됩니다. 

예를 들어, 소음 공해가 내이 속에 있는 미세한 모발과 같은 수용체를 손상시킬 수 있는 수준이라면, 이 아이는 고음역대의 음색을 들을 수 있는 능력을 잃게 될 지도 모릅니다. 반면에 아이가 이러한 고음을 적절한 수준으로 듣게 된다면, 집중하는 능력과 집중력을 키우는 뇌 영역은 더욱 자극됩니다. 아이가 큰 소리의 음악이나 기계 소리에 노출된다면 이러한 필수적인 자질의 유기적 토대를 잃어버릴 수 있습니다. 새로운 치료영역에서는 두뇌의 통합을 돕기 위해 이처럼 소리와 음색을 다루는 작업도 시도되고 있습니다. 

전자 매체 또는 텔레비전의 사용, 심지어 조기 학습의 강조로 인하여 움직임이 제한된다면, 세상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기 위한 학습의 필수적인 요건이 방해를 받게 됩니다. 요즘 아이들의 경우, 아주 어린 유아 시기에서 조차 이러한 움직임을 박탈당하기도 합니다. 아기는 바닥에 깔린 담요 위에 누워 몸을 굽혔다 폈다, 굴렀다 하는 대신에, 아주 푹신한 아기 의자에 묶인 채 시간을 보냅니다. 걸음마를 배우는 데 필수적인 모든 균형감, 주요 근육의 발달 및 움직임의 탐색은 이 시기에 보행기의 사용으로 인해 크게 손상되기도 합니다. “안전”에 대한 현대인들의 집착은 아이들의 자유로운 탐색 활동을 심각하게 제한함으로써 아이의 전반적인 발달을 “안전하지 않은” 상태로 이끌어갈 수 있습니다. 

또한 어린 아이의 모방하는 능력이 지나치게 지시적이고 구조화된 활동에 압도되어 버리면, 이러한 필수적인 요소들은 약화되기도 합니다. 미디어의 영향이 그러하듯이 유치원 교사들 또한 아이들의 타고난 모방능력을 감소시킬 수 있습니다(지시적이고 구조화된 활동을 지나치게 제공함으로써). 아이가 모방 능력을 키울 수 있는 최상의 환경은 창의적 놀이 영역입니다. 이 글을 통해 우리는 어른들의 작업이 아이들에게 모방 뿐 아니라 반짝이며 날아오르는 상상력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러한 환경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모방할 가치가 있는 성인의 존재입니다. 아이 주변에 있는 성인은 아이들의 광범위한 감각경험의 장과 목적이 있는 움직임에 반응하는 능력을 허용하고 장려하는 외부 환경을 만들고 아이들의 모방하려는 자연스러운 욕구를 길러주려는 노력을 해야 합니다. 더불어 우리는 매일매일의 정서적인 일상 만큼이나 우리 자신의 고유한 질서, 리듬, 목적, 의지 등을 포함하는 내면 환경에도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Sharifa Oppenheimer


오늘 우리는 의지의 발달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려고 합니다. 우리는 이를 통해 한 아이가 모방할 수 있는 어떤 것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아이들이 세상에 대해 얼마나 개방적인지, 그리고 아이 전체가 오롯이 감각기관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모든 감각인상은 육체 안으로 깊이 스며듭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아이들 속으로 흘러 들어오는 감각 인상을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감각기관은 누군가에 의해 사용되어지는 하나의 도구일 뿐입니다. 예를 들어, 눈 그 자체는 보지 않습니다. 누군가가 그 눈을 통해 보아야만 합니다. 눈은 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합니다. 보기 위해서는 인간 존재 안에서 의지가 작동해야 합니다. 물리적인 육체는 전지구적 실재로부터 탄생한 영혼적이고 영적인 존재인 아이들을 위한 하나의 거대한 감각기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두 가지 현상을 보게 됩니다. 첫번째는 아이들이 완전히 감각존재라는 것이고, 두번째는 아이들이 완전히 의지존재라는 것입니다. 의지와 함께 그리고 감각을 통해 환경으로부터 받는 모든 인상은 장기에 흔적을 남기며 육체 안으로 깊이 포착되고 수용됩니다. 이러한 두 가지 현상의 조합은 모든 아이들이 탄생 전 존재로부터 선물처럼 받아 가지고 온 모방의 아름다운 힘 속에서 보여집니다. 전 지구적 삶 속에서 인간의 영혼은 우주 존재 가운데에서 살고 있으며, 그들에게 침투하여 그들을 따릅니다. 이러한 “습관”은 출생의 문을 통과하며 유아시기에까지 이어지고 이는 모방의 힘을 통해서 보여집니다. 아이의 모방은 감각을 통해 받아들이고 의지로 인해 통제되는 두 개의 과정입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The Education of the Child(pp.33-34)에서 의지의 발달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어린 시절의 첫 7년 동안 기본적인 교육원리를 적절하게 적용함으로써 강하고 건강한 의지를 개발할 수 있는 토대가 마련되었다. 강하고 건강한 의지를 위해서는 잘 발달된 물리적 신체 형성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의 모든 장기가 비교적 불완전한 형태를 띄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아이들은 아직 성인들이 보이는 형태의 장기를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장기의 리듬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장기는 어떻게 형성되는지, 장기들이 어떻게 리듬을 만들어 가는지, 장기들 간의 리듬적인 활동들을 어떻게 조합해 나가는지” 질문해 보아야 합니다. 다른 듯 하지만 비슷한 질문이 한 가지 더 있습니다. “어떻게 아이의 의지는 의도적이며 질서 있게 될까요?” 두가지 모두 주로 아이의 외부 세상의 영향, 특히 동시에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낮 또는 주간 동안의 모든 리듬적인 사건을 통해 생겨납니다. 

 

이제 생애 첫 3년 동안의 기간을 한 번 살펴봅시다. 이 시기에 아이들은 자신들의 의지의 힘을 연습하고 사용하려는 시도들을 하며, 이는 물론 무의식적으로 일어납니다. 어린 아이가 천천히 똑바로 서서 걸을 수 있는 능력을 습득할 때 우리는 의지의 위대한 힘을 발견합니다. 걷기 시작한 아이는 엄마를 따라 집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며 빨래를 하고 바닥을 닦고 식료품 바구니를 열었다 닫았다하며 “일”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엄마가 자신의 일을 함에 있어 서두르거나 조바심내지 않고 질서 있게 하면 할수록 아이의 의지는 더 강하게 자라납니다. 이런 방식으로 아이들은 자신의 팔과 다리를 더 잘 통합하여 움직일 수 있는 방법을 터득해 나갑니다. 

아이들은 어떤 일을 할 때 반성하거나 미리 고려하지 않습니다. 오로지 모방과 습관을 통해서만 합니다. 아이들의 습관은 의미 있는 본보기를 통해 발달하고, 이러한 본보기를 통해 아이들은 자신의 한계를 경험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어떤 어른이 아이가 접시에 있는 시금치를 식탁에 버리거나, 식탁보나 다리미 코드를 잡아당길 때에만 웃는다면, 이 아이는 나쁜 습관을 배우고 건강하지 않은 의지를 발달시키게 됩니다. 어른은 앞서 헤아려야합니다. 아이가 부적절한 행동을 할 때에는 상상력이나 판타지를 이용하여 그러한 행동으로부터 아동을 전환시켜야 합니다. 아이의 행동에 따른 결과를 예상하고 한계를 설정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은 어른이 아이에게 모든 면에 있어 대표성을 띄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게 할 때에만 아이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명확한 방향성과 현실성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행동을 안내할 수 없기 때문에 언제나 의미 있는 활동에 둘러싸여 있어야 합니다. 

 

처음으로 아이들이 자신의 의지를 스스로 경험할 때 첫 번째 위기가 발생합니다. 그러고나서 아이들은 자신을 지칭할 때 “나”라는 단어를 사용하기 시작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싫어”라는 말을 하기 시작합니다. 그와 동시에 아이들은 스스로 성장하고자 하는 의지와 주변 사람들의 의지 사이에서 갈등을 경험합니다. 아이들의 의지는 아이들을 둘러싼 환경 속에서 다른 사람의 의지와 관계할 때에만 밖으로 드러납니다. 아이들은 자신의 의지와 주변 사람들의 의지 사이에 조화로운 관계를 만드는 방법을 천천히 배워나가야 합니다. 여기, 또 한번 우리는 아이들의 환경 속에 얼마나 아름답고 건강한 습관들, 리듬들이 있는지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건강한 습관들, 리듬들은 이 시기의 아이들이 경험할 수 있는 많은 어려운 상황들을 극복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어린 시절 첫 번째 기간 동안(0~3세) 아이의 의지는 엄마의 행동에 강하게 영향을 받습니다. 이제 3세에서 5세 사이의 두번째 기간 동안 아이의 의지는 깨어나는 상상력과 점점 더 연결되어 아이들의 판타지 속에서 작동하기 시작합니다. 이 시기에 아이들의 판타지는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 속에 존재하는 사물로부터 영감을 받습니다. 예를 들어, 아이는 나무조각과 몇 개의 돌멩이를 가지고 와 사람들을 태우는 배라고 하고, 인형에게 밥을 먹이기도 하고, 작은 벤치를 우편함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아이의 판타지에서 시작된 의지는 사물을 자신의 의지대로 변형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이는 더 이상 실제적인 사물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때 아이의 의지대로 변형시키고자 하는 이 실제의 사물은 창의적인 변형을 위한 여지를 남겨둘 수 있을 만큼 충분히 단순한 것이어야만 합니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 안에 있는 사물들이 판타지를 불러 일으킵니다. 아이들은 자신에게 실제적인 새로운 것들을 창조함으로써 큰 기쁨과 자유를 맛볼 수 있습니다. 아이들이 환경 속에서 어떻게 사물을 자신들의 놀이 재료로 변환시키는 지에 대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엄마가 커다란 상자를 포장한 후 남은 끈 조각을 의자 뒤에 놓아두었습니다. 아이는 나무 숟가락 하나를 끈으로 묶고 반대편 끈을 잡아당기며 크레인을 만듭니다. 

 

3세와 5세 사이의 아이에게 있어, 아이의 판타지와 기억력은 동시에 출현합니다. 이 시기의 아이들은 오로지 이전에 본 것 또는 경험한 사건들만 기억할 수 있습니다. 아이는 어떻게 기억할까요? 기억 속의 그림과 실제 사물을 연결하는 판타지는 어떻게 일어날까요? 아이는 어떻게 이런 판타지를 창의적인 놀이로 풀어낼까요? 의지의 작용이 없다면 이런 일은 절대로 일어날 수 없습니다. 의지의 작용이 혼란스럽다면, 아이의 놀이에서 의미 있는 일은 절대로 일어나지 않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아이들의 의지가 올바르게 발달될 수 있도록 돌보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게 됩니다. 건강하고 조화로운 의지를 발달시킨 아이들은 늘 동일한 놀이 안에, 동일한 사물을 이용하면서도 새로운 아이디어를 생각해 냅니다. 그런 아이들은 자신들의 의지로 인하여 늘 활동적이고, 늘 바빠 보입니다. 예를 들어, 우편함이라고 했던 그 작은 벤치는 이제 동물을 위한 먹이통이 되기도 하고, 인형을 위한 침대가 되기도 하며, 난로가 되었다가 …여러 많은 다른 사물로 변형됩니다. 우리는 종종 스스로 잘 놀지는 못하면서 친구의 놀이를 방해하는 아이들을 보게 됩니다. 또는 자기 스스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으면서 다른 친구들이 놀이하는 것을 쳐다보며 서있기만 하는 아이들도 봅니다. 그런 아이들은 냉담하고 메말랐다는 느낌을 줍니다. 이런 아이들에게는 유치원에서의 엄격한 리듬과 따뜻한 분위기 뿐 아니라 교사와의 의미 있는 활동을 더 짧게 또는 더 길게(for a shorter or longer time) 경험하게 해주어야 합니다. 

 

대부분 지금까지 늘 바쁘고 스스로 무엇을 해야 할 지 잘 알고 있던 아이들이 5세쯤 되었을 때, 두 번째 위기가 나타납니다.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판타지가 사라집니다: 의지가 마비된 것처럼 보입니다. 아이들은 이렇게 말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뭘 해야 할 지 모르겠어요”, 또는 “지루해요”.내면에 커다란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때 어른들은 아이의 판타지를 자극하거나 하지 않고 아이들에게 고요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인정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말해서는 안됩니다. “어제 너는 정말 아름다운 광경을 만들어냈잖아. 그걸 다시 해봐!”. 대신에 아이들이 자신의 인형 그림을 이용하여 작은 책을 만들게 한다든지, 펠트로 바늘 꽂이를 만들게 한다든지 또는 아이들이 깎아 만든 편지 오프너를 사포질하게 하는 등 실제적인 작업을 하도록 안내해야 합니다. 

이러한 모든 활동은 반드시 성인의 작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어야 합니다. 아직 모방의 시기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아이들과의 활동 속에서 점점 더 많은 언어를 사용할 수 있습니다. 와서 교사의 일을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지만, 이때 질문의 형태로 말해서는 안됩니다! 만일 아이가 주방에 와서 음식을 하거나 빵을 굽는 일을 돕게 하고 싶다면 반드시 이렇게 말해야 합니다. “이리와서 좀 도와주렴”. 이렇게 질문해서는 안됩니다. “나를 좀 도와주겠니?” 이렇게 짧은 시간 일한 후에 아이에게는 새로운 충동이 생겨나고, 이러한 충동은 아이 자신의 놀이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렇게 새로운 양상을 보이는 발달단계인 5세 즈음, 아이들에게는 스스로 하고 싶은 일에 대한 그림이나 정신적인 이미지가 생겨납니다. 이제 의지의 힘은 정신적 이미지와 함께 연결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사실은 아이들에게 더 많은 노력을 요구합니다. 아이는 아직 유치원에 있고, 놀이감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미용실, 구급차, 낚싯배, 식당 등 정신적 이미지 안에서 새로운 계획이 생겨났을 때 아이는 이전 연령에서 잘 훈련되어진 판타지를 불러낼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합니다. 또한 이때 아이에게는 인내심, 열정, 지속할 수 있는 힘이 필요한데. 이러한 것들은 모두 의지가 강하게 작용해야 하는 기능들입니다. 

5세 이전에는 놀이를 위한 자극이 외부에서 주어집니다. 이때 아이들은 구부러진 막대기를 보면서 “나는 굴뚝 청소부야.”라고 말합니다. 이 아이가 5세가 지나면 이렇게 말할 것입니다. “나는 굴뚝 청소부가 되고 싶어. 그래서 긴 손잡이가 달린 빗자루가 필요해”. 그러면 아이는 자신이 생각한 것과 비슷한 것을 찾고, 깃털을 발견해서 그것들을 모으고, 그 위에 길다랗게 구부러진 리본을 붙이고는 행복해합니다. 5세 이전에는 아이의 외부에서 판타지를 자극하는 것이 있을 때 의지활동이 일어납니다. 5세가 지나면 의지의 힘은 내면의 노력을 요구합니다. 이때 의지는 정신적 이미지와 결합하고 더불어 잘 훈련된 판타지와도 결합합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은 외적인 자극을 필요로 하지 않은 채 자신들의 내적인 이미지 안에서 생겨난 새로운 사물을 창조해냅니다. 

이러한 관점으로 아이들의 발달을 이야기 할 때 우리는 아이들이 반드시 강한 신체적 활동-톱질, 못박기, 망치질과 같은-을 경험해야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은 실제로 이러한 일들을 하기도 하지만, 의지의 힘은 근육 안에서만 훈련되는 것이 아니라 인생의 특정한 시기에 아이의 내면에서도 강하게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그런 것들이 정신적 이미지를 위해 요구됩니다. 

 

아이들은 종종 놀이 안에서 도움을 요청할 때가 있는데, 이때 우리가 어떻게 도움을 줄 수 있을지에 대하여 두 가지 놀이상황을 예로 들어 이야기해보겠습니다. 플로리안은 6세 4개월이고 서커스 디렉터 놀이를 하고 있습니다. 플로리안은 여러 아이들에게 다양한 동물 옷을 입게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어디에 있어야 하는 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말했습니다. 그 순간 모든 아이들은 플로리안의 말을 잘 따랐고 모두 즐거워 했습니다. 하지만 플로리안에게 더 이상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없었고, 이미 몇몇 친구들은 다른 놀이를 하고 있을 즈음, 나는 플로리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제 서커스는 모두 끝났고 서커스를 하던 사람들은 간식을 먹어야 할 시간이야.” 그러자 플로리안이 대답했습니다. “알겠어요. 그런 다음 걔네들은 모든 짐을 다 싸서 다른 마을로 갈 거예요. 아 맞다, 이건 나의 서커스 왜건이예요. 서커스 왜건에는 반드시 둥그런 지붕이 있어요. 그렇지요?”

플로리안이 지목한 사물은 이미 그 이전에 “새장”이었고, 내가 작업하는 테이블 옆에 세워져 있었습니다. 플로리안은 자신의 “왜건”을 만들고 나서 작은 창문 사이로 얼굴을 들이밀고 나를 쳐다보며 말했습니다. “아, 벌써 국경에 가까이 왔어요! 난 이제 다른 나라로 운전해서 갈건데, 그 나라에는 눈이 많이 쌓여있어서 제설기가 필요할 거예요”. 그러고 나서 플로리안은 작은 나무 쓰레받이를 왜건 앞에 고정시키고 제설기라고 했습니다. 뒷편에는 소금을 뿌리기 위한 무언가를 설치했어요. 그걸 끌고 가기 위해 꼭대기에 작은 구멍이 있는 벤치를 사용했지요. 그러고는 그것을 다른 것들 위에 올리고 작은 구멍을 통해 밤을 던지며 아주 즐거워 했습니다. 

그 다음날, 플로리안은 다시 왜건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하지만 이번에는 제설기나 소금뿌리는 기계는 없었습니다. 놀이가 끝났을 때 이렇게 말했어요. “이제 이건 기관차예요.” 그러고 나서 그 뒤로 두 대의 왜건을 더 만들었어요. 다른 친구가 플로리안과 함께 놀고 싶어했지만, 무엇을 해야할 지는 잘 몰랐어요. 그래서 내가 말했습니다. “왜건 하나는 내 짐을 위한 거야. 내 짐을 들어주기 위해 짐꾼들이 올 거고 나는 여행을 가야 해. 다른 왜건은 식당이 될 수 있겠네. 여행하는 동안 무언가를 먹을 수 있게 말이야.” 아이들 사이에서 엄청난 “비즈니스”가 일어난 거지요. 아이들 중 몇은 기차로 내 모든 상자들을 옮겨 오기도 했습니다. 다른 아이들은 식당차 안에 테이블을 셋팅하기도 했지요. 나는 접혀진 천으로 만든 메뉴판을 받았고 주문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들은 아름다운 그릇들을 가지고 와 식사를 차려주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여전히 나의 업무용 책상에 앉아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아이들의 놀이 안으로 통합되었습니다. 종종 그런 것 처럼, 아이들은 내가 그들과 함께 식당 차에 앉아있지 않아도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이렇게 충만하게 놀이할 수 있는 아이들을 해마다 만날 수 있다는 것이 참 행운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이들은 서로가 서로를 촉진합니다. 또 다른 예로 시몬의 이야기를 해보겠습니다. 시몬은 6살이고 테이블 아래에 캠핑 장소를 만들었습니다. 놀이가 끝난 후, 더 이상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때 내가 말했습니다. “캠핑 장소에는 늘 사람들이 음식을 해먹는 모닥불이 있지.” “아 맞다, 우리 나무를 좀 구해올까?” 내가 말했어요. “그래, 세 개만.” 아이들은 세 개의 다리를 만들기 위해 나무 막대들을 붙였어요. 빨간 색과 노란 색 천으로 그 아래에 불을 만들었구요. 막대들 가운데에 작은 바구니가 고정되었는데, 그건 냄비였어요. 아이들은 두 개 더 나무막대를 달라고 했고, 두 개의 의자 사이에 올린 후 커다란 천을 덮어 텐트를 만들었지요. 그 텐트 안에는 울로 만든 카페트와 쿠션을 넣어주었어요. 이 놀이는 정리 시간이 될 때까지 계속 되었지요. 정리할 시간이 되었을 때 아이들은 “아직 다 못놀았다”며 아쉬워했어요. 

 

질문입니다: 이 놀이 상황 안에서 의지의 힘을 더 강화시키기 위해 성인은 무엇을 했을까요? 정말로 루돌프 슈타이너가 말한 것 처럼 장기에 대한 인상이 외부로부터 오고, 또한 잘 발달된 형태의 장기가 의지를 잘 지원한다고 하면, 그렇다면 아이들을 둘러싸고 있는 환경에는 리듬, 좋은 습관 그리고 사랑과 같은 다양한 방식의 질서가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아이들 주위에서 적절한 질서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는 성인들이 미리 헤아려야 합니다. 이를 통해 아이들은 차분하고 의도적이며 생각을 가진 행동을 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무언가를 잊어버리거나 무언가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마구 뛰어다니지 않게 될 것입니다. 또한 미리 생각한 후에 하는 행동은 아이들의 의지가 바람직하지 않은 형태로 표현되는 것을 치유해주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아이가 문을 시끄럽게 두드릴 때에는 “그렇게 하면 안된다.”고 말하는 대신 완전한 의식을 가지고 일관된 방식으로 상황 속에서 아이와 함께 머물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아이가 문으로 다가가는 그 순간 우리는 우리 마음 속에 떠오르는 행동을 따르게 됩니다. 

교사 역시 아이들이 유치원에 도착하기 전에 자신의 일에 집중하고 있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아침에 깨어났을 때 엄마는 이미 바쁜 상황에 놓여있는 것처럼, 아이들이 아침에 유치원에 도착했을 때 교사들 역시 바쁘게 움직입니다. 그러면 아이의 의지는 교사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주변 활동의 분위기 속에서 자리를 잡아갑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어떤 놀이를 하고 놀 지 완전히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아마도 아이들은 틈이 날 때 마다 교사의 일에 참여하고자 할 것입니다. 

 

아이들의 놀이에서 교사가 고려해야할 또 하나의 사항은 하루의 리듬뿐 아니라 교사 자신의 작업 활동에 있어 그 해의 리듬 또한 돌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지나치게 구조화되어 있지는 않더라도(without being pedantic) 특정 시간 동안 특정한 작업을 반복적으로 수행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 유치원에서는 해마다 가을이 되면 그 해의 크리스마스 바자회를 위해 무언가를 만드는 활동에 집중합니다.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나면 우리는 자수를 놓고, 부활절이 지나면 목공을 합니다. 나는 이런 작업들을 거의 매일 몇 주 동안 반복할 뿐 새로운 어떤 활동은 하지 않습니다. 그림 그리는 날만 빼구요. 

매일 자유놀이 시간에, 나는 나의 일을 합니다. 나는 아이들이 할 만한 새로운 꺼리들을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대신 아이들이 사용할 수 있는 재료들(대부분이 내 일의 잔재들이지요)이 충분히 준비되어 있는지 확인합니다. 일을 하면서 생긴 천조각이나 종이조각들, 나무조각들은 모두 아이들의 바구니에 담아둡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자유롭게 자신이 필요한 것들을 그 바구니에서 꺼내 갑니다. 그리고 다양한 새로운 것들을 만들어냅니다. 어떤 아이들은 내가 한 것을 따라하려고 하고 어떤 아이들은 자신들만의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11월에 내가 아이들을 위해 색을 입히고 기름칠 한 등불에 풀을 칠한 후 크리스마스 바자회를 위해 transparencies를 만들면, 그 후로 최소 2주 동안 매일(그림 그리는 날을 제외하고) 큰 테이블 위에는 가위와 풀, 색깔 종이들이 아이들의 바구니와 함께 놓여있습니다. 금색 종이조각도 물론 있습니다. 어떤 아이들은 작은 등불과 transparenies를 만들기도 하고, 어떤 아이들은 왕관이나 인형을 위한 작은 장난감을 만들어 집에 가지고 가곤 합니다. 

많은 아이들이 그 테이블에 와서 여러 날 동안 작업하는 반면, 어떤 아이들은 한 번도 그 테이블 주위로 작업하러 오지 않기도 합니다. 그런 아이들은 그 해 언젠가 내가 유치원에서 사용할 앞치마를 만들거나 테이블보에 자수를 놓고 있을 때 참여하려고 할 지도 모릅니다. 그때에는 아이들의 바구니에 바느질 할 때 쓰인 예쁜 색실들이 들어있겠지요. 자르고 남은 천 조각들 역시 아이들의 바구니 안에 담아두어 자유롭게 사용하게 합니다. 

언젠가 내가 작은 그릇, 숟가락, 초 받침 등을 만들고 있을 때 늘 주변에는 아이들이 만들고 왁스칠하던 작은 나무 조각들이 있었습니다. 목공 칼은 대체로 아이들이 사용하도록 허용하지 않기 때문에 아이들은 뾰족한 나무 막대기를 가져와서 썩은 나무 그루터기 바깥쪽을 “깎아”내기도 합니다. 

이처럼 교사의 작업은 늘 유치원에서의 일과를 위해 의도적이고 유용합니다. 아이들은 그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작업에 참여하거나 작업하고 있는 교사 주위에서 놀이합니다. 아이들은 언제나 교사의 작업에 대해 잘 알고 있고, 그에 대해 따뜻하고 사랑스러운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과정에는 몇 가지 전제 조건이 따르는데, 바로 질서와 리듬 그리고 좋은 습관이 그 안에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이들의 의지의 힘은 올바른 물리적 환경 안에서 더욱 더 질서 정연하게 되고 더 강화됩니다. 왜냐하면 아이들은 모방적인 존재들이기 때문입니다. 모방은 의지 활동입니다. 모방을 가르칠 수는 없습니다. 아이들 자신의 고유한 의지로 행해져야 하는 일입니다. 의지 활동은 지극히 개별적이며 나아가 자아와 연결됩니다. 

이는 아이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모방할 때 관찰됩니다. 유치원에서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아이들은 같은 사건을 보면서도 서로 다른 다양한 반응들을 보입니다. 어떤 아이들은 즉시 그것을 모방하거나 비슷한 형태의 놀이를 하려고 하고 또 어떤 아이들은 그런 놀이를 하고자 하는 충동을 전혀 느끼지 않습니다. 모방에는 커다란 자유가 따릅니다. 만일 우리가 기꺼이 위에 언급한 전제조건을 충족시키면서 작업하고 있다면 아이들은 스스로 필요로하고 또 무의식적으로 추구하고 있는 의지의 발달을 이루어나가게 될 것입니다. 

 

놀이 안에서 아이들을 적절히 안내하기 위해 우리는 아이들의 발달 단계에 따른 다양한 수준들을 늘 고려해야 합니다. 이제 마지막 기간인 5세에서 7세 사이의 발달에 대해 좀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5세 이후, ‘아이가 원하는 것’에서 아이가 ‘해야 하는 것’으로의 전환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우리가 단지 우리의 마음에 들도록 아이들에게 명령이나 요구를 한다는 것을 뜻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앞선 시기에 교사와의 관계에서 형성된 강력한 연결고리를 벗어나, 이제 아이들은 자신들이 해야 하는 것을 하기 원한다는 뜻입니다. 비록 우리가 유치원의 형님 친구들(곧 졸업을 앞둔)에게 더 많은 언어적 지시를 사용하고 정신적 이미지에 호소하기는 하지만, 우리가 그 아이들에게 무엇을 할 수 있는지, 어떻게 할 수 있는지 알려준다 해도, 기다릴 수 있는 힘을 고취시킨다 해도, 그렇다하더라도 모방은 여전히 중요합니다! 

지금까지 아이들은 매일매일, 주변 환경을 돌보고 축제를 준비하는 등 유치원 안에서 요구되어 지는 일들을 교사들이 해내는 것을 무의식적으로 알아차려왔습니다. 또한 아이들은 교사가 늘 그것을 원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해야할 일이기 때문에 한다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습니다. 5세 이후의 아이에게는 이러한 태도까지도 모방될 수 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냐구요? 예를 들어, 아이들은 교사가 오랜 시간 그 일에 매달리는 것을 관찰합니다. 축제나 바자회를 준비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목공이나 자수처럼 한 가지 일에 오랜 시간이 요구되는 작업들을 하기도 합니다. 아이들은 교사들이 그 일을 하는 동안 교사로부터 끈기와 인내, 돌봄을 발견하게 됩니다. 아이들은 매일 매일의 과정에 흥미를 느낍니다. 또한 종종 아이들은 교사들이 편안하게 느끼지 않는 일에 대해 그것을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골무를 끼고 바느질을 하는 것이 부자연스럽게 느껴질 수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사는 늘 골무를 사용합니다. 

 

아이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모를 때 줄 수 있는 또다른 도움의 방식은 바로 특별한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 나누는 것입니다. 그 누군가가 곤경에 처했을 때 자신의 직업적 조건 안에서 어떻게 대처했는지 말해 줄 수 있습니다. 5세에서 7세 사이의 아이들은 누군가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 인물에 대한 내면적인 상을 만들어낼 수 있기 때문에 현존하는 누군가가 그들 앞에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예를 들어, 나는 아이들에게 나의 자수 선생님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또는 골무를 끼지 않고 바느질을 한 어떤 재단사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또는 어느 컨퍼런스에 갔을 때 만난 루드비히라는 가정부(이 기사 뒤에 나오는 “루드비히 이야기”를 보세요)에 대해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1학년이 되기 전 해 후반부쯤, 우리는 유치원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아이들에게 어떤 특정한 일을 하도록 요청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은 그 목표를 이루어내기 위해 자신들의 의지의 힘을 매우 긍정적으로 강화시킵니다. 나는 늘 이 시기의 아이들에게 아주 간단한 자신만의 매듭인형을 만들어 볼 것을 권합니다. 루돌프 슈타이너는 낡은 헝겊을 가지고 잉크 반점으로 눈을 찍어 스스로 완성한 “bajazoo”가 아이의 천재성을 깨어나게 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크리스마스가 지나고 인형의 담요에 자수를 놓는 것부터 시작하여, 인형의 머리를 만들기 위해 양털을 늘리고 분홍색 플란넬 천을 이용하여 손을 매듭지었습니다. 아이들은 컬러 펜슬을 이용하여 자기 자신만의 눈을 점 찍었습니다. 그러고나서 머리카락을 만들고 옷을 만들었습니다. 연말이 되었을 때 여러 개의 인형을 만들어내기도 했고, 어떤 아이들은 딱 하나만 만들어 내기도 했습니다. 인형은 만들기가 끝나는 그 순간부터 아이들의 놀이 속으로 통합되었습니다. 남자 아이들과 여자 아이들 사이에 하나의 차이점이 발견되기도 합니다. 여자 아이들은 인형들을 먹이거나 다양한 방식으로 인형을 가지고 놀며 계속해서 옷을 만들어 줍니다. 남자 아이들은 자신들이 만든 차에 인형을 태우고 돌아다니거나 구급차 놀이를 할 때 환자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주말에는 인형을 집에 가져가 잘 돌보아줍니다. 

6세 즈음, 아이들은 지시를 따를 수 있게 됩니다. 아이들은 어떤 일을 하도록 요구받았을 때 그것을 기쁘게 해냅니다. 예를 들어, 아이들은 교사의 요청으로 다른 교실에 가서 무엇을 전달해주기도 하고, 빗자루와 쓰레받이를 가져오기도 하며 설거지를 하기도 합니다. 교사는 어떤 것을 요청할 때 아이들에게 질문의 형식을 사용해서는 안됩니다. 어떤 아이가 그 일을 할 수 있는지 , 그 아이가 어떤 일을 하기 좋아하는지 또는 때때로 그 아이에게 어떤 일이 필요한 지 알아차리려고 노력하십시오! 아이는 교사의 요구를 거부할 때도 있지만 그런 경우 다른 아이가 와서 “제가 그걸 할까요?”라고 묻기도 합니다. 

이 시기 아이들은 우리의 지시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은 언어를 통해 형성된 정신적인 이미지를 자신들의 행동으로 전환시킬 수 있습니다. 좀 더 이른 시기에 우리는 아이들이 해서는 안되는 일로부터 아이들을 전환시켜야 했습니다. 이제 아이들은 명확하게 규정된 한계와 “던지지 않아”, “이건 좋지 않아”라는 등의 명확한 지시를 더 필요로 합니다. 그리고 그런 지시를 할 때에는 반드시 아이가 여전히 교사의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더불어 사랑과 권위로부터 나오는 확신을 가지고 말해야 합니다. 

 

내가 이 글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모든 것은 루돌프 슈타이너가 1923년 4월 19일 도르나흐에서 했던 강연들(Lecture 5 of The Child’s Changing Consciousness and Waldorf Education, pg. 110)을 마음에 두고 한 것입니다. 

 

“…이갈이를 하기 전에 (아이들은) 의지에 영역에 살고 있으며, 이는 아이가 주변을 모방한다는 사실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시기에 아이의 몸 속에 들어가는 것은 또한 아이의 유기체에 견고하게 자리잡은 도덕적이고 영적인 힘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이들의 의지가 발달할 수 있고 어른에 의해 형성된 좋은 습관과 질서 그리고 한계를 통하여 강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이들이 1학년이 되었을 때, 아이들의 의지는 점점 더 의식적으로 훈련될 것입니다. 이제 아이들은 꽃에 물주기, 창틀 닦기, 일주일 동안 칠판 닦기 등 교사에 의해 주어진 과제를 주어진 시간 동안 해내야 합니다. 원하지 않아도 아이들은 매일 매일 기억해야 하고 무언가를 해내야 합니다. 아이들은 스스로를 극복해내기 위해 배워야만 합니다. 유치원 시기 동안에는 특정 아이를 위해 반복적인 과제를 고집하는 것은 너무 이릅니다. 우리는 초감각적인 민감함을 가지고 모방의 방식을 통한 가르침으로부터 벗어나 사랑 가득한 권위를 통한 가르침으로 아이들을 안내해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위대한 예술입니다! 

이 글을 통해 내가 이야기한 것들이 여러분들에게 아이들의 모방과 의지의 발달에 있어 본보기가 얼마나 중요한 지 충분히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인 루드비히 이야기]

 

루드비히는 나이 많은 한 아주머니의 가정부였습니다. 우리는 주말 컨퍼런스 기간 동안 그녀의 집에 머물렀습니다. 아침 식사 시간에 먹을 것이 떨어지면 루드비히는 음식을 더 가져다주었습니다. 

유치원에 와서 나는 아이들에게 루드비히에 대한 묘사를 해주었습니다. 그런 후 6살 짜리 남자아이에게 쟁반 위에 있는 컵을 가지고 와 모든 아이들의 자리에 놓아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아이는 컵을 한 번 훓어보더니 가운데에 있는 컵 하나를 골랐고 그것을 자기 자리에 놓았습니다. 그러고는 그 컵에 물이 가장 많이 들어있다고 생각하며 흐뭇해하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았습니다. 그 순간 내가 말했습니다. “루드비히는 그렇게 하지 않았을 거야: 루드비히는 늘 다른 사람들을 섬기고 가장 마지막 것을 자기가 갖지.” “정말요?”라고 아이는 반문했습니다. “정말로”라고 나는 대답했지요. 그러자 아이는 그 컵을 다른 아이의 자리에 놓아주었고, 다른 모든 아이들의 자리에 컵을 하나씩 놓아준 다음 가장 마지막 것을 자기 자리에 놓았습니다. 


Freya Jaffke

독일, 발도르프 유치원 연합. 

[산비탈리아 기자 ithankforall@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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