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연히 벌어진 일들

기사입력 2018.10.10 15:01 조회수 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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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벌어진 일들

 

부천 자유 발도르프학교

담임교사 이상아

 

 

 

2005년 여름, 우연히 결혼을 했다.

남미로 이민 간 사람이라고, 잘 되면 남미 가서 살 수 있다기에 솔깃해서 나간 자리였다.

세 번 만나고 세 달 만에 결혼해서 동남아시아에서 8년을 살았다.

 

우연히 아이들 둘을 낳았다.

꼼꼼히 따져보기도 했지만 마침 시기와 여건이 잘 맞아 호주 국제 학교를 보냈다.

지나친 경쟁도, 학업에 대한 강요도 없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학교였다.

 

우연히 한국에 들어오게 되었다.

결코 원치 않은 상황이었으나 한국어로 수업하는 발도르프 학교에 대한 기대가 컸고, 친정집 가까운 곳에 거처를 마련하고 보니 마침 그곳에 있었던 발도르프 어린이집을 거쳐 아이들은 학교에 가면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가 학교에 가지 못했다.

 

2013년 겨울, 인지학 센터에서 학교 교사 교육을 받기 시작했다.

방법이 없었다. 아이를 위해서도 내 스스로의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조금이라도 더 알아야만 했고 무엇이든 실천해야만 했다. 센터에서 우연히 혁신학교 선생님들을 만났다. 아이를 그 학교로 옮기고 발도르프 교육을 접목한 혁신학교로서 일반 공교육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부모로, 방과 후 교사로, 학교 운영위원회 위원장으로 각종 학부모 모임을 조직하고 공부하고 수공예 작업하고 시, 도 교육청을 드나들며 온 몸과 마음을 던졌다.

 

2017년 가을, 우연히 부천 발도르프 학교에 갔다.

다른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계속되는 부정적 에너지 끝자락의 목마름이었고 누군가의 지극히 긍정적인 평가에 그저 한번 둘러보고 싶었을 뿐이었다. 우연히 오고 간 이야기 속에서 가슴이 뛰고 눈물이 났다.

당장 학교에 필요한 과목이 있어 수업 시연을 준비하고 아이들을 만나고 이후 계획을 논의하면서, 나는 우연히 그렇게 발도르프 학교 교사가 되었다.

 

2018년 지금, 나는 부천 발도르프 학교 8학년 담임교사이자 대표 교사이다.

우연히 내게 온 두 명의 여자 아이들은 점액질과 우울질 가득한 10대 청소년들이고 다다다다담즙의 교사를 만나 1학기에는 8학년 프로젝트를 무사히 마치고 2학기에는 8학년 연극을 준비 중이다.

둘만의 프로젝트가 그러했듯이 둘만의 연극은 오직 그녀들과 나의 딱 지금의 필요와 만족, 발전을 위한, 대체불가 한, 전무후무한 작품이 될 것이다.

 

어느 때부터인가 계획대로 되는 것이 없었다. 내 의도와 다르게, 하지만 마치 퍼즐조각처럼 정확하게 맞아떨어지는 사건과 사건, 사람과 사람. 이 모든 일들이 과연 우연일까.

 

남편을 처음 만났던 날, 나는 분명하게 알고 있었다. 혼자 사는 삶이 아니라면, 누군가와 결혼해서 살게 된다면 반드시 이 사람일 것이라는 사실을.

아이들 둘을 만나기 전에 나는 꿈을 꾸었다. 그래서 알고 있었다. 나와는 전혀 다른 둘 이상의 사내아이가 내게 맡겨지리라는 것을.

싱가폴에서 사는 동안, 아이들이 국제학교를 다니는 동안, 나는 알고 있었다. 채울 수 없는 답답함, 공허함의 끝에 물질로 대신할 수 없는 어떤 제 3의 영역 같은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작은 규모의 학교, 이제 막 자리 잡느라 단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날것의 고민들이 날마다 속살 그대로를 드러내며 정면으로 마주하기를 기다리는 학교.

우리는 발도르프 교육 공동체를 실험 중이다. 살아있는 아름다운 수업을 준비하고 전혀 다른 형태로 구현하고 경제 공동체를 꿈꾸고 내 아이 네 아이를 넘어 공동 육아로 서로의 아이들을 길러내고 매 순간 함께 되어져감에 감사하고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교육 공동체.

 

나는 이제 안다. 실은 인지학을 만나기 훨씬 전부터 이미 지금 이 순간을 위해 단련되고 채워지고 있었음을. 세상의 모든 우연들은 그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깨닫는 바로 그 순간부터 이번 생의 필연으로 펼쳐진다는 것을.

 

나는 오늘도 사고 훈련을 한다.

 

 

 

[김윤슬 기자 anthroposo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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