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지학 농부 장구지 선생님

기사입력 2018.10.24 15:48 조회수 9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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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반갑습니다. 제가 여기서 이렇게 한국말로 농법을 이야기를 할 것이라는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처음 한국에 와서는 더듬더듬 한국말로 이야기하고 했는데 이제는 제법 한국어가 많이 늘었습니다.
  저는 사실 농법 공부를 한 사람이 아닙니다. 저는 시골에서 자랐는데, 농업이 싫어서 농업을 멀리한 사람입니다. 큰 도시에서 살겠다고 매일같이 노래했어요. 전라도 익산에서 살았는데, 알곡이 익기 전에 새들이 와서 쪽쪽 빨아 먹어버리기 때문에 새를 봐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그렇게 싫었어요. 감자하나 삶아주고 누룽지 한 조각 들고 새를 보러가는 것이 싫었다. 어서 기회만 되면 한국에서 나가고 싶었는데 그것이 이루어졌어요. 그래서 한국과는 영원히 빠아빠이를 하고 떠났습니다. 그런데 삶이란 것이 싫은 사람은 또 만나게 마련이고, 하기 싫은 일은 또 하게 되더라고요. 그것이 우리 운명이고, 교육입니다.
 한국에서 발도르프학교를 저보다 먼저 준비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 학교를 준비하면서 이 시기에 한국에서 발도르프학교가 태어난다는 것은 조산이라고 생각해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어린이집은 한 두 사람이 할 수 있지만, 학교는 최소한 3~4명은 되어야 시작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발도르프학교가 생기는 것을 안 도와주려고 했어요. 그랬는데 조산인데 어떡하나, 그대로 둘 수는 없지 않은가, 그래도 키워야하지 않은가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교사들과 오이리트미도 하고, 과천에 있으면서 인지학 공부도 하면서 학교 일을 돕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아이들이 빨리 8학년, 9학년이 되었어요.
 그런데 발도르프학교를 졸업하는 아이들이, 농업실습을 하지 않고 졸업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독일에 있으면서 유학 온 학생들에게 발도르프 교육 과정을 마치고 두 번째 과목으로 농업을 공부하라고 권했습니다. 그런데 하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어요. 그 학생들 말이 “우리 아버지가 전답을 팔아서 대학을 보내고, 유학을 보냈는데, 제가 다시 농업을 한다면 우리 아버지가 통곡을 하실 것이다”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아, 한국이 아직도 농업에 대한 인식이 낮구나. 생각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도 여전히 농업에 대한 생각은 아주 낮습니다. 아이들이 공부 안하고 놀면 너희는 커서 농사나 지어라 라고 말을 합니다. 번개 불에 콩 볶아먹는다는 속담을 이정희 선생님께 처음 들었을 때 저 말이 무슨 말인가 했는데 이제는 그 말이 이해가 됩니다. 지금도 어느 면에서는 굉장히 빨리빨리 합니다. 그런데 어느 면에서는 여전히 변하지 않는 의식들이 있어요.
 제가 젊었을 때는 이렇게 10명 이상의 사람이 모이면 동사무소에 신고해야 했습니다. 그러면 모임하는 사람들 뒤에 누가 앉아 있어요. 모여 있는 사람들이 무슨 이야기하는지 지켜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런 시대를 겪었어요. 아침에 학교가면 새마을 운동 노래 부르고 그랬어요. 60년대 한국을 떠나서는 한국을 완전히 잊고 공부하고, 결혼하고, 오이리트미도하고, 여러모로 병원에서 근무하고 그랬습니다.
 한국의 발도르프학교를 돌보는 사람으로서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발도르프학교를 다니는 아이들이 농업에 대한 공부를 안하고 졸업을 하고 학교를 떠나면 되겠는가 막중한 책임감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무조건 준비를 하기 시작했어요. 홍성에 있는 풀무학교에 가서 도움을 받으면서 어떻게 씨를 뿌려야하는지, 농사 준비를 어떻게 하는지를 배웠어요. 그러다 그렇게 싫어하던 농사일을 통해 신비스러운 경험을 하게 되었어요. 제가 인지학을 하고, 오이리트미를 해서 그럴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매일 같이 물을 주고, 일주일 단위로 조금씩 싹이 나고, 그런 것 들이 너무 신기했어요. 농업에 대한 애착이 하루가 다르게 생기더라고요, 이제는 농업이 그렇게 재미있어요. 감자도 심고, 상추도 하고, 정말 농업은 누구나가 다 해보셔야 할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우리 삶의 가장 기본이 되는 일이예요. 사실 컴퓨터는 없어도 살 수 있어요. 그런데 곡식이 없으면 살 수가 없습니다.
 한국의 씨앗이 97%이상 외국에 넘어가 있습니다. 그 사람들이 씨앗을 안주면 우리는 작물을 키울 수가 없게 됩니다. 제가 독일에 가서 한 농장에서 실습을 하는데 연구소에 한 사람이 말하길 ‘너희는 씨앗에 있어서는 식민지국가가 되었다.’라고 하더군요. 저는 그 말을 듣는데 등 뒤로 찬물을 맞는 기분이었습니다. 왜 우리가 식민지가 되었는가, 매일같이 밥은 먹어야 하는데, 한국에 그나마 남은 씨앗들은 잡초나 쓸모없는 풀뿐이다. 그것이 우리나라에 남아있는 씨앗입니다.  한국에는 농업을 가르치는 교수도 없고, 농업 진흥청도 없어졌어요. 세계에서 씨앗을 잘 만드는 3나라가 있는데 그 중 한 나라가 한국이라고 합니다.
 그 연구원이 말하길 ‘내 누이가 아이가 없어서 한국에서 여자아이를 입양해서 키웠는데, 그 아이가 아주 똑똑한 변호사가 되어서 우리 집안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준다. 그래서 나이 많은 한국 실습생이 온다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반대했지만 내가 책임지고 돌보겠다고 해서 받았다’그래서 그 연구원의 도움으로 실습을 할 수 있었고, 지금도 스위스에서 살고 있는 그 분과  농업에 대한 교류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한국에 한 번도 안 왔는데 한국에 대해서
너무 많이 알고 있는 것이 무섭게 느껴졌어요. 그러면서 또 다시 식민지가 된다는 말이 너무 무섭게 느껴졌습니다. 
 여러분들은 해방이 되고 나서 한국이 많이 변했을 때 태어나 자랐지만 저는 해방 때 태어나서 6.25전쟁도 겪고, 4.19때 우리도 나가서 행진해야 했어요. 중학교 3학년인데 다 나오라했어요. 5.16을 겪었습니다. 저는 정말 전쟁에서 나서 전쟁에서 자랐습니다. 제가 66년도에 나갈 때 정말 빠이빠이 하고 나갔어요. 그런데 결국은 제 발로 다시 들어왔습니다. 그래서 한국의 농업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생각하면 슬픈 일이라 생각됩니다. 제가 농업을 아무것도 모르고 시작을 했지만 지금은 9년째가 되었어요. 정말 재미있고, 잘한 일이다 생각합니다.
 사실 외국에서 유기농을 한다 하면 아주 엄격한 규정이 있어요, 한국에서의 유기농 농사를 하고 일하는 사람들을 보면 과연 유기농인가 싶어요. 소에게 먹이는 사료에도 유전자 조작된 콩과 옥수수가 들어있고, 성장호르몬제를 먹이며 크고 있는데 이것이 과연 유기농인가 의문이생깁니다. 그런데 이것을 유기농이라고 인정해주는 것이 한국의 유기농단체입니다. 정말 한국에 할 일이 많구나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런 것을 보면  어떻게 우리가 OECD 10번째 국가라고 할 수 있는지 의문입니다. 정말 돈만 가지고 OECD 국가의 선진국이 되는 것은 아니라고 절실히 느끼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한국이 세계 유기농기준에 같이 발맞춰갈 수 있는가. 외국사람들이 한국의 유기농을 보면 깜짝 놀랄 것입니다. 저농약․무농약으로 시장에 내 보낼 때도 약간 농약을 뿌린다고 해요. 그래서 왜 뿌리느냐 하면 며칠은 생생해야 팔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청계발도르프학교 학생들이 농업실습을 오면 아이들에게 유기농도 보고, 관행농업도 보고, 풀무학교도 가서 전공수업도 보고 오라고 합니다. 사람이 좋은 것도 보고, 나쁜 것도 보게 합니다. 그래야 내가 갈 길이 무엇인지를 알 수가 있어요. 그래서 마을을 전체 많이 돌아보게 합니다. 제가 농업강좌 책이 나올 때 같이 읽어보고 그랬는데 그 책에 보면 슈타이너가 한 말이 있어요.  ‘농업은 혼자 지을 수 없다. 다른 생명과 같이 짖는 것이다.’ 그러면서 들판에 밭이 있으면 밭가에 들장미도 심고, 새들이 즐겨 와서 노래할 수 있고, 나비들이 즐겨 와서 화분을 옮겨주기도 하면서 이들이 와서 같이 농사를 짓는 것이 좋다고 했어요. 그래서 꽃과 나비와 같이 농사를 짓고 있습니다. 제가 농사를 짓고 있다 보면 새들이 오기도하고, 나비들이 오기도 하면서 같이 짖습니다.  나비가 좋아하는 씨를 외국에서 가져와 심기도 했어요. 그랬더니 옆 밭에 일하시는 할머니가 와서는
 ‘당신 여기가 농사를 짓는거야, 꽃장난을 하는거야
 이곳에 콩을 심으면 콩이 몇 대는 나올텐 데, 여기 다 둘러서 심으면 몇 말은 나올 것인데 ‘하면서 할머니가 와서 야단을 치더라, 혼자 일하기 심심해서 그랬다 했더니 한심해 하셨어요.
 이것이 한국의 상황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하시는 말씀이 당신네 밭에는 왜 나비도 많고, 벌도 많고, 왕벌도 많다. 벌에 쏘이면 죽는다는 것이에요. 그래서 제가 말하길 아직까지 왕벌에 쏘이지 않았습니다. 라고 안심을 시켜드렸다.
그리고 저희 집에 왕벌이 집을 크게 지었다. 저도 시골에서 자랐지만 왕벌이 집을 이렇게 크게 짖는지 몰랐어요. 한 번은 잘 아는 풀무학교 선생님이 놀러 오셔서 차를 마시다 왕벌집을 발견하고는 119에 신고하면 떼어준다고 신고해서 때라고 말하고는 겁이 난다면 급히 가버렸다. 그래도 저는 떼지 말라고 했어요. 왕벌에게 아침에 인사하고, 저녁에 인사하면서 같이 삽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이 오면 그 사람 머리 위를 빙빙 돌면서 경계를 합니다. 여호와증인들이 저희 집에 들어오다가 벌들이 머리 위에서 윙윙대고 있으니 들어오지는 못하고 책하고 글만 써서 놓고 간 적도 있어요. 방문했는데, 그냥 놓고 가더라고요. 그래서 야, 애들이 다 알아보는 구나. 왕벌들과 대화를 나누고 그랬더니 다 아는 것 같아요. 말법집이 워낙 커서 한 번에 자를 수 없어서 절반을 잘라서 저희 집 선반에 올려놨다. 하나의 예술작품이에요. 집안에 예쁘게 놓아 뒀어요. 말벌은 집을 지을 때 쓰레기를 주워다 침을 발라 집을 짓는다고 합니다. 정말 예술작품이에요. 어디서 그런 것을 배우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아름다운 예술작품입니다. 
 우리 집에 학생들이 실습을 오면 아이들에게 제가 아는 것도 많지 않아서 가르칠 것도 없는데 무엇을 말해야 하는가 부담이 되었어요. 그런데 그때 마다 아이들이 알려주더군요.
 선생님 집에 오면 지렁이가 많아요. 그래서 다른 유기농농장에도 많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렇지 않다고 하더라고요. 여기에는 벌도 많고, 나비도 많은데 다른 곳은 그렇지 않다고 말하더군요. 저는 학생들이 실습을 오기 전에 미리 많은 준비를 해 놓습니다. 밭에 고랑을 만들어 두면 아이들이 그 밭고랑을 매고 합니다. 그래서 한번은 용기 있는 사람 두 명만 나와 보라고 했어요. 그랬더니 벌이 있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을 하며 아무도 나오질 않아요. 그래서 제가 다시 말해주었어요. 너희들을 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일을 하면 공격하지 않을 것라고요. 벌은 싸움을 하면 공격을 하는데 싸우지 않으면 쏘지 않는다고 말해주자 여자아이가 용감하게 나왔습니다. 남자아이는 없냐 하고 되물었더니 한 남자아이가 조용히 나왔어요. 그래서 그 두 명의 아이에게 미션을 주었습니다.
‘이제는 너희 둘이 저기 밭 끝까지 매어라. 지금까지 이 농장에서 벌에 쏘여서 응급실에 간 아이들은 아무도 없었어. 만약 너희들이 쏘이게 된다면 이 농장 최초로 벌에 쏘이는 기록을 남기는 반이야’라고 말해주었어요. 저는 나머지 아이들과 다른 일을 한참 하고 있는데 갑자기 두 명의 아이들이 ‘야, 우리가 해냈다.’고 큰소리로 환호성을 지르더라고요.
 우리 집에 온 아이들이 말해요. 선생님 집에는 지렁이도 많고, 벌도 많다고, 그래서 제가 다시 말해주었어요.
‘너희들이 자세히 보아라. 지렁이는 뭐 먹고 사냐? 지렁이도 숨을 쉬냐?’그랬더니 아이들이 모두 그렇다고 대답을 하더군요. ‘지렁이도 숨을 쉬려면 위에 덮은 것이 없어야 돼요.  그런데 다른 농장에는 밭고랑에 비닐을 덮어져 있어요. 어떤 사람들은 신문지로 덮기도 해요. 잡초자라지 말라고 덮어둡니다. 그러면 그 땅에서는 지렁이가 살수가 없어요. 그 아이들이 유기농 농장에 가서 퇴비를 뒤집는데 냄새가 너무 고약해서 두 번을 샤워를 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농장에서는 만든 퇴비는 냄새가 안 난다고 말하더군요.
 아이들에게는 이해를 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주어야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매년 실습을 위해 아이들이 오면 미리 많은 준비를 열심히 해둡니다. 그리고 퇴비를 만들 때도 층층이 하라고 합니다.  퇴비를 만들 때 마다 층층이 퇴비를 넣고, 부엌에서 나온 쓰레기도 층층이 쌓으라고 합니다. 시루떡을 만들 듯이 층층이 퇴비를 쌓고 재도 넣고 약초 같은 것도 뿌려주고 합니다. 그러면 아이들이 퇴비 만드는 것이 무척 복잡하구나라고 말합니다.
 또한 쐐기풀도 퇴비로 넣어요. 퇴비를 만드는데 쐐기풀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이것은 시금치보다 비타민 C가 더 많아서 전쟁 때 독일 사람들이 이 쐐기풀을 뜯어다 밀가루을 풀어 죽을 쒀 먹고 그랬다고 합니다. 이 쐐기풀은 철분을 많이 가지고 있어요. 알고 보면 지혜로운 식물이에요. 제가 농업을 안 하려고 하니까 남편이 상추라도 심어보라고 작은 밭을 하나 만들어주었어요. 그 옆에 쇄기풀이 굉장히 많이 자랐어요. 그래서 그것으로 맛있게 음식을 해 먹었는데 언제가 보니 쇄기풀이 점점 적어지고 어느 순간 없어지더라고요. 그래서 내가 뭘 잘 못했나 싶었어요. 그런데 자세히 보니 쐐기풀이 있는 땅은 흙이 푹신푹신했더군요. 다른 땅은 질퍽한데 쇄기풀이 있는 땅은 부드럽고 다르더라고요. 그래서 옆집 농부한테 물어보았어요. 그랬더니 쇄기풀은 굉장히 인지스러운 풀이라면서 인지스럽게 산다고 말을 해주었어요. 쐐기풀은 땅이 딱딱하면 그곳에서 보금자리를 만들어 놓고 번식을 시킨데요. 그래서 땅이 충분히 좋아지면 또 다른 곳에 가서 뿌리를 내리고 그 땅을 좋은 땅으로 바꾼다고 해요. 얘네들은 근본적으로 사회적인 식물이구나 라고 느꼈답니다. 쐐기풀이 자란 땅은 딱딱한 땅이 부드러워지고 만지면 좋은 느낌이 들어요. 그래서 그 흙을 제가 혀에 조금 대 보았다. 먹지는 않았는데 기분 나쁜 느낌이 없이 아주 부드러웠어요. 그리고 그 땅에다는 뭘 심어도 다 잘 자랐어요.   그래서 그 다음부터 그 흙을 다른 곳에 뿌리고 했어요.
 그리고 또 하나는 슈타이너가길 톱풀에 대해서 말했어요. 톱풀은 잎사귀가 톱날처럼 생겼고  하얀 꽃을 피웁니다. 이 톱풀은 인지학병원에서 꽃을 꺾어 다가 차를 만들어서 암환자들에게 식후 차를 끌여서 먹이기도하고  간이 나쁜 사람들에게 차를 마시라고도 합니다. 그런데 이 식물은 젠틀맨이라고 표현을 가지고 있어요. 무슨 뜻이냐 물었더니 이 톱풀의 뿌리를 가지고 가서 심으라고 하더군요. 씨는 저절로 펼쳐질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그래서 그것을 가져다 심었더니 그 톱풀 주위에 땅이 부드러워지더라고요. 못쓸 땅에 심으면 그 주위가 다 좋아진다고 합니다. 우리도 어디 가서 보면 시끄러운 여자들이 있는 곳에 젠틀맨이 등장하면 조용해지듯이 이 톱풀도 그런 뜻에서 젠틀맨이라고 했다고 해요.
 슈타이너가 슈튜트가르트에서 강연을 하고 왕복 3시간 정도 왔다갔다하며 스위스 도르낙으로  가는데 함께 동행한 사람이 말하길 ‘슈타이너씨 왜 요즘 사람들은 굉장히 훌륭하고 좋은 말을 많이 하는데 실천하는 것을 볼 수가 없고, 인지학을 하면 명상을 해야 하는데 별로 명상하는 것 같지도 않고 그렇다.’. 그랬더니 슈타이너가 말하길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그것은 먹거리 때문이다. 독일의 농업이 산업화될 때 지금의 농사물은 우리의 배만 채우지 제대로 인간에게 영양분을 전해주지 몫하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어떻게 보면 농업이 아주 슬픈 단계에 있습니다.  제 맛을 못 내고, 당근인지 뭔지 구분도 잘 안되고, 농업이 미래에는 굉장히 우리에게 의미 있게 다가올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그런 시대가 왔습니다.  한국은 더 빨리 온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 지금 유전자 조작 식품을 세계에서 가장 많이 수입을 합니다.  천만 톤이 넘는 유전자조작 식품을 수입하는 나라입니다.  
 우리가 먹는 먹거리는 우리에게 에너지를 주어야합니다. 그런데 지금 사람이 말은 많이 하는데 그것을 의지로 옮겨주는 힘이 없습니다. 의지로 옮겨주어서 실천을 할 수 있어야하는데 힘이 없어서 그것을 실천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그래서 화학비료도 그때만 해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무척 나쁩니다. 그리고 원전, 에너지 원전에서 나오는 힘을 가지고 전기를 사용하고 있어요. 좁은 한국에 24개가 작동되고 있어요. 이것이 한번 터지면 걷잡을 수 없게 됩니다. 원전에서 나온 쓰레기는 어떻게 하느냐고요, 체르노빌시대에는 소련사람들이 시멘트를 덮어버렸다. 그런데 지금 그 쓰레기를 어떻게 하는지 아무도 모르고 있습니다.
 슈타이너는 원전은 죽은 에너지라고 했습니다. 살아있는 에너지를 가지고 공기 속에는 산소, 탄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질소 등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생명역동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면 우주에 있는 좋은 요소들 질소, 인, 칼슘 등 조금 전에 말씀드린 그 젠틀맨식물에도 칼슘이 많이 들어있어요. 그런 식물들로 해서 증폭제를 만들면 우주에 있는 요소들이 땅으로 들어오는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생명역동농법에는 그래서 9가지 중요한 증폭제가 있어요. 그래서 이것을 만들어서 쓰라고 알려주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특허권도 없었어요. 슈타이너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것을 이곳에 가져왔습니다. 이 소뿔에 소똥을 넣어서 만듭니다. 
생명역동농법으로 만든 식품이 비싸다고 하지 말고 구입해 주세요. 2헥타. 6천평의 농사를 지으면 사람 한사람 정도 써서 농사를 지을 수 있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인건비가 안 나옵니다. 저는 연금으로 살아가니 돈이 안 나와도 됩니다. 그런데 내가 죽고 없어도 젊은이들이 농사를 계속 짓겠다고 하면 소비를 해 주어야 하고, 어른들이 사주어야 합니다. 그래야 미래가 있습니다.  
 
 
 

 

[이주아 기자 anthroposo2@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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